아직은 쌀쌀한 봄날, 2024년의 첫 뚜벅이 투어가 지난 9일(토)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인 전북 익산으로 떠났다. 3월 뚜벅이 투어는 익산시의 ▲왕궁리유적지 ▲미륵사지 ▲아가페정원 ▲고스락을 차례로 방문했다.

왕궁리유적지 중심부에 위치한 왕궁리오층석탑

왕궁리유적지에 도착하니 익산 문화해설사가 뚜벅이를 반겼다. 이곳은 동서 245m, 남북 290m의 거대한 규모로, 용화산에서 발원한 능선 끝자락의 낮은 구릉 위에 조성된 백제 후기 궁궐터다. 1989년부터 진행된 발굴조사 결과, 백제 무왕 때 왕궁을 건립해 운영하다가 후대에 왕궁의 중요 건물을 헐어내고 사찰을 지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이날 모든 투어에 함께한 익산시 문화해설사는 “수부 도장을 찍은 기와는 익산 왕궁리유적과 익산토성, 부여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등 백제 도성 관련 유적에서만 발견됐습니다. 수부는 왕실과 중앙 관청을 나타내는 글자로, 익산에 왕궁과 중앙행정기구가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유물입니다”라고 말했다. 문화해설사의 풍부한 해설과 함께하는 여행은 뚜벅이 투어의 장점이다.

유적지 내에는 왕궁리 5층 석탑, 왕궁의 담장인 궁장, 왕이 정사를 돌보거나 의식을 행하던 정전 건물지, 공방, 정원과 후원, 화장실, 부엌 등이 발굴됐다. 또한 기와, 토기, 중국 청자 조각, 금과 유리 공예품, 조경석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 후기 왕궁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백제 왕궁의 정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왕이 휴식을 취하거나 사신들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쓰였을 이곳은 독특한 돌과 장대석, 강자갈을 이용해 장식한 수조, 정자로 구성됐다. 바위, 산, 강과 같은 자연공간을 작은 규모로 축소해 재현한 모습의 정원이었다. 또한 정원에 사용한 어린석은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륵사지는 남아있는 백제 시대의 절터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중앙부 1개의 목탑을 중심으로 양옆에 각각 석탑이 자리해 있었다고 한다. 녹색 유약을 입혀 서까래 끝에 놓아 장식하는 기와인 녹유 서까래기와, 석등 받침돌인 석등하대석, 전각이나 탑의 처마에 매다는 풍경인 금동 풍탁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

왕궁리유적지와 미륵사지는 2015년 7월에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부산·익산 지역의 6곳의 문화유산과 함께 유네스코에 등재됐는데, 이들 유산은 백제 후기(475~660년)의 고유한 문화, 종교, 예술미를 보여준다. 

왕궁리유적지에 들어서니 문화해설사가 뚜벅이를 반긴다. 이곳은 벚꽃 명소라고 한다.
미륵사지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뚜벅이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한국 석탑의 시원인 미륵사지석탑

 

이어서 뚜벅이는 고스락으로 이동했다. 고스락은 으뜸, 최고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전통 방식대로 항아리에 장을 담그는 곳이다. 주인장이 1985년부터 습지를 개간해 나무를 심으며 가꿔온 곳으로 현재 3만여 평 규모에 항아리만 5,000개가 넘는다. 소나무 아래 따듯한 햇살을 받는 항아리가 반짝거린다.

카페와 한식당이 있고 직접 담근 간장, 고추장, 된장, 식초 등을 판매하니 익산에 간다면 고스락에 들려 발효식품 체험도 하고 건강한 먹거리도 챙겨보자.

유독 소나무가 많은 고스락의 풍경. 송화가루가 장에 들어가 장맛이 특별하다고 한다.
유독 소나무가 많은 고스락의 풍경. 송화가루가 장에 들어가 장맛이 특별하다고 한다.
고스락 발효실의 항아리들
고스락 발효실의 항아리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가페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가페정원은 1970년 故 서정수 신부가 노인복지시설인 아가페정양원 내 어르신들을 위해 수목을 심어 정원으로 조성한 곳이다. 2021년 3월 전북 제4호 민간정원으로 등록한 후, 정비사업을 거쳐 개방됐다.

계절마다 수선화, 튤립, 목련, 양귀비 등 아름다운 꽃의 향연이 이어지고, 하늘 높이 뻗은 메타세쿼이아가 울타리처럼 조성된 산책길이 인상적이다. 이곳에서 뚜벅이들은 저마다 인생사진을 남기겠다며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다시 차에 올라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봄바람이 불자 흔들리던 미륵사지 석탑에 달렸던 풍탁의 맑은 종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무왕이 수도를 옮기고 왕국의 번성을 꿈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막을 내린 백제 왕국의 슬픈 역사가 내는 소리일까? 역사를 통해 삶을 돌아보고 비춰보다 보니 곧 익숙한 풍경과 마주한다.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남아있는 백제의 흔적을 통해 우리가 가는 길을 되짚어보자.

[한국조경신문]

아가페 정원은 영국식 정원과 닮았다.
아가페 정원은 영국식 정원과 닮았다.
아가페정원의 메타세쿼이아
아가페정원의 메타세쿼이아
미륵사지석탑 처마에 달린 풍탁이 바람에 흔들리면 맑은 종소리가 난다.
미륵사지석탑 처마에 달린 풍탁이 바람에 흔들리면 맑은 종소리가 난다.
왕궁리유적지의 매실나무에 매화가 활짝폈다. 저멀리 보이는 구불 구불한 길은  백제 시대 왕궁의 수로다.
왕궁리유적지의 매실나무에 매화가 활짝폈다. 저멀리 보이는 구불 구불한 길은  백제 시대 왕궁의 수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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