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길 가천대 조경식물생태연구실 연구원

[한국조경신문 이수정 기자] 올해 정원박람회에 태화강정원박람회 한 곳이 새로이 추가됐다. 정원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수요의 방증이지만 아직 한국에서 현대정원의 역사가 걸음마 단계임을 생각하면 빠른 변화다.

정원의 활성화와 맞물려 끊임없이 조경계 안팎에서 식물서식처와 관련된 식재 디자인에 대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정원은 인위적 활동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올해 다가오는 박람회를 앞두고 박상길 조경식물생태연구원을 만나 이미 해외에서는 자리 잡은 식물 환경에 기반을 둔 식재 디자인의 가능성을 들어보았다.

 

식물 서식처 이해를 통한 플랜팅 디자인

- 정원이 사람들에게 시각적인 만족을 주기 위한 소모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 특히 정원박람회에서 우려섞인 목소리를 많이 듣는다.

: 정원에 대한 현대적 논의가 시작된 건 비교적 최근이다. 외국의 경우에도 초창기에는 쇼가든에서 출발했다. 이백 년 전부터 많은 가든디자이너들이 식물 서식처 탐구를 위한 자연답사를 떠나면서 현대의 자연풍 식재 또는 생태 식재까지 이어지게 됐다. 즉 식물 그 자체가 아니라 식물의 삶(Plant Life)을 이해함으로써 각각의 식물이 어떤 환경에 적응해 왔는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식재 디자인(Planting Design)은 식물과 그 식물이 겪어 온 삶의 내력, 즉 고유한 서식 환경을 서로 결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식물과 인간이 서로 공유하고 있는 삶의 동질성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에, 식물 그 자체만으로 평면적인 구성을 하는 것은 식물 디자인(Plants Design)에 머무르고 만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이 살아 갈 장소가 필요하듯 자연의 식물을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지형의 차이 속에서 살고 있다. 정원박람회 출품작 및 서울 시내 공원에 존치된 일부 작가 정원의 경우 비가 왔을 때 배수가 안 돼 침수가 발생하기도 했다. 식물의 삶을 지탱하는 토양과 지형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플랜트’가 아닌 ‘플랜팅 디자인’이 중요하다.

 

식재 환경 고려하면 고유한 지역 경관 확보할 수 있다

- 올 상반기에 열리는 LH가든쇼, 태화강 정원박람회를 비롯해 여러 지자체 및 단체에서 박람회가 열릴 예정이다. 그러나 어느 박람회를 가더라도 비슷한 정원과 경관이 반복된다.

: 이제는 사람들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피에트 우돌프(Piet Oudolf)의 디자인이 꽃과 색상보다 식물의 형태미에 집중한 것처럼 더 이상 꽃에 집착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태화강 정원박람회의 경우 화려한 꽃을 심으면 환경단체에서 우려하듯 비료 살포로 수질오염이 걱정된다. 정원박람회에서 꽃을 많이 심지 않으면 양료가 적어지므로 하천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침수됐을 때 견뎌낼 수 있는 식물 종을 선택해야 된다. 하천이기 때문에 육상과 동일하게 조성하면 지속가능할 수 없다. 정원은 단기간 전시효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 고유한 그 지역만의 경관이 자리 잡는 것이다. 앞으로 환경 친화적인 정원으로 갈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작가의 창의성을 억누르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공원과 정원은 마치 ‘붕어빵’처럼 다 비슷하다. 환경과 식물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수분과 양분 공급이라는 끊임없는 인위적 투입이 있으니 특별히 그 지역에 들어맞는 식물을 구태여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큰 원인이다. 건조한 환경이면 건조에 강한 식물을 선택하고, 습한 곳이라면 습생식물을 선정하면 된다.

 

토양의 생물학적 개량과 지피식물의 관계

지속가능한 정원을 위한 방법을 제안한다면?

: 토양은 기본적으로 무기물과 유기물의 혼합이다. 유기물 공급원으로 흔히 낙엽을 떠올리지만 사실상 식물의 뿌리는 숨어 있는 유기물 공급원이다. 뿌리는 낙엽처럼 바람이 불면 흩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고스란히 자리 잡은 채 토양을 서서히 성숙한 단계로 이끈다. 이것을 토양천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천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이 표토층(Surface Layer)을 피복하는 지피식물이다. 지피식물은 토양을 빠르게 피복하여 침식과 토양 견밀화를 예방하고 잡초발생을 억제하면서 토양을 건강한 상태로 변화시킨다. 지피식물은 사람의 피부와 같으며 옷으로 비유하자면 육체미를 드러내는 레깅스라고 할 수 있다. 멀칭재 대신에 지피식물의 사용을 권장하는 것은 외국의 경우에도 비교적 최근의 경향에 속한다,

또한, 지피식물은 심미성과도 연관된다. 대표적인 지피식물인 이끼에서도 드러나지만 지피식물은 지형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준다. 그런데, 박람회에 전시되는 정원을 보면 지피식물을 지형과 관련하지 않고 시각적 조형물로만 본다. 식물에 시선이 간다는 말은 지형에 시선이 가 있음을 의미한다. 지피식물은 지형이 아름답게 조성됐을 때 빛을 발한다. 자연에서 편안한 느낌을 가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형태미에 집중한 피에트 우돌프의 정원. 정원은 단기간 전시효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곳이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자연스럽게 고유한 그 지역만의 경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빈곤한 정원의 ‘어휘’와 더불어 비평이 부재한 풍토 반성 필요

현대 정원에 대한 담론이 필요한 때다. 많은 답사를 통해 공부하는 모임도 많다.

: 비평은 흠집 내기가 아니고 의미의 재발견인데 조경작품과 정원작품에 대한 비평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비평은 내재된 ‘의미’의 발견을 언어라는 텍스트로 전환하는 것인데, 정작 작가의 주관적 의도와 달리 작품을 표현하는 객관적인 디자인 어휘가 부족하고 해석의 여지가 빈곤해 비평에도 제한이 있다.

현대의 유명작가들이 자연 답사를 통해 식재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어오듯 최근 자연이 품은 풍부한 ‘어휘’를 찾고자 ‘자연에서 공부하는 정원 모임’에 기성작가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비평적 시각과 정원에 대한 욕구를 해소시켜줄 정원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외국의 경우 대학과 연계한 디플로마 과정을 비롯해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전문화돼있다. 서울시민정원사처럼 정원 자원봉사자도 장기적인 교육을 받고 싶어 하지만 수용할만한 곳은 없다.

끝으로 식재 디자인에 대한 연구의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조경학계에서 식재 디자인 및 정원 디자인과 관련한 이론적 연구가 부족하다. 이 부분에 대해 그동안 소홀하게 여겨 왔다. 국내 식재 디자인에 관한 해외 서적들이 번역돼야한다.”

그동안 식재 디자인 연구 및 해외 식재 디자인에 대한 번역작업을 주로 해온 박 연구원은 앞으로 번역물 출간을 앞두고 있다. 올해 3월 말 닉 로빈슨(Nick Robinson)의 ‘식재 디자인 핸드북(The Planting Design Handbook)’이 출간될 예정이다. 가천대 조경학과 전승훈 교수가 대표 저자인 이 책은 식재 디자인의 기본 원리를 다루고 있고 2016년의 3판을 통해 새롭게 소개된 생태식재의 가치 및 초본식물 중심의 정원 디자인과 관련된 최근의 동향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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